2024년 5월 19일(일)

영화 스크린 현장

[빅픽처] '챌린저스', 테니스로 풀어낸 관계의 역학…이 영화가 '야한' 이유

김지혜 기자 작성 2024.05.06 11:07 조회 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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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저스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영화 속 삼각 로맨스의 역사는 유구하다. 누벨 바그의 대표 감독인 프랑수아 트뤼포의 '쥴 앤 짐'(1962)을 시초로 수없이 반복, 재생산돼 온 삼각관계 서사는 더 이상 참신함과는 거리가 멀다. 진부한 삼각 로맨스는 어쩔 수밖에 없이 인물의 '선택'에 집중하게 되고, 영화의 성패는 그 선택을 어떤 '방식'으로 그리느냐에 따라 갈린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신작 '챌린저스'는 흥미로운 각본과 매력적인 배우, 세련된 감각으로 무장한 연출 덕에 한시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이른바 '욕망 3부작'이라 불리는 영화 '아이 엠 러브', '비거 스플래쉬',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관객의 오감을 깨우는 연출을 보여줬던 구아다니노 감독은 '챌린저스'에서 특유의 감각적인 연출에 박력까지 더해 역동적이면서도 농밀한 로맨스물을 만들어냈다.

US오픈 주니어 대회를 제패하며 차세대 테니스 스타로 각광받았던 '타시'(젠데이아)는 무릎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접고 남편 '아트'(마이크 파이스트)의 코치를 맡고 있다. 메이저 대회 출전을 앞두고 슬럼프에 빠진 남편을 위해 타시는 챌린저급 대회 참가를 제안한다. 무난한 우승으로 남편의 기를 살려줄 계획이었던 타시는 이 대회에서 남편과 둘도 없는 친구 사이이자 자신의 전 연인인 '패트릭'(조쉬 오코너)를 만나게 된다. 대회 결승에서 마주한 아트와 패트릭은 양보할 수 없는 일전을 벌이고, 관중석에서 둘의 플레이를 지켜보던 타시의 묘한 표정과 함께 현재와 과거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챌린

◆ 테니스에 녹여낸 세 남녀의 삼각 서사 "테니스는 관계"

"테니스는 관계야."

영화는 초반 타시의 입을 빌어 이야기의 주제를 함축한다. '챌린저스'는 스포츠 영화의 구조를 띄고 있지만 관계의 역학을 그린 로맨스 영화다.

테니스는 코트 중앙에 네트를 두고 네트를 넘어온 공이 자신의 진영에 두 번 튀기(바운드) 전에 라켓을 이용해 공을 상대 진영으로 넘기는 스포츠이다. 내가 넘긴 공을 받지 못하게 함으로써 상대를 굴복시키기도 하지만 자신이 넘긴 공이 상대에 닿지도 않은 채 선을 넘어가 스스로 무너지는 경우도 있다.

테니스는 노련한 기술과 강력한 피지컬, 그보다 더 강인한 멘탈을 요구하는 스포츠다. "심리전이 테니스의 모든 것"이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 것이다.

챌린저스

'챌린저스'는 사랑 혹은 욕망을 테니스에 대입하고, 승리(쟁취)라는 목적을 향해 맞붙는 세 플레이어의 대결을 시종일관 긴장감 넘치게 묘사한다.

타시와 패트릭, 아트의 삼각관계는 러브 게임이자 심리 게임이다. 패트릭과 아트는 주니어 시절 '불과 얼음'으로 불리며 환상의 복식조를 이뤘다. 극과 극의 속성은 서로의 빈틈을 매워주며 최고의 조합을 이뤘지만 한 여성을 동시에 사랑하며 균열이 생긴다.

패트릭과 아트는 완전히 다른 캐릭터다. 패트릭은 단순하고 즉흥적이지만 아트는 스마트하고 섬세하다. 성격은 사람과의 관계 맺기는 물론 삶의 방식에도 영향을 끼친다. 10년 사이에 달라진 그들의 위치가 그것을 증명한다.

챌린저스 결승전은 플레이어인 패트릭과 아트, 관람석에 앉아 있는 타시를 포함한 세 사람의 과거와 현재를 함축한다. 그리고 이 경기의 결과가 자신들의 미래를 결정지을 것이라는 것을 그들 모두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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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세 사람의 13년에 걸친 연애사를 플래시백으로 보여준다. 플래시백의 빈번한 사용은 영화를 지나치게 설명적으로 만든다는 단점이 있지만 '챌린저스'의 플래시백은 늘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세 사람이 펼치는 심리 게임의 근원과 향방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호기심을 자극하고, 해소시킨다. 13년 전과 8년 전 그리고 불과 하루 전의 일이 현재의 플레이에 영향을 끼치고 때론 지배하는 상황까지 온다.

아트와 패트릭의 양보할 수 없는 결전에서 서로가 서로의 심리를 어떻게 장악하고 활용하는지가 무척이나 흥미롭게 펼쳐진다. 이때 카메라는 크래시 줌(Crash Zoom: 피사체를 향해 갑작스럽고 빠르게 줌인하며 촬영하는 기법)으로 타시의 알 수 없는 표정을 반복적으로 잡는다. 세 사람의 세계에서만큼은 절대자인 인물이지만 구아다니노 감독은 그녀의 감정을 투명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13년 전 세 사람이 호텔 방에서 키스를 나누는 장면은 구아다니노 감독의 '폴리아모리'(다자 연애)에 대한 판타지를 시각화한 것 같기도 하다. 여자 한 명에 남자 둘인 이 불완전한 삼각 구도가 그 순간만큼은 완성형처럼 보인다. 두 사람과의 관계에서 완전한 주도권을 쥐고 싶은 타시의 욕망을 재미난 장난처럼 그려낸 신이지만 이 장면은 세 남녀의 역학 관계에 대한 미리보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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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테니스는 곧 섹스의 은유다. 챌린저컵 대회 결승전으로 시작해 승부와 함께 마무리되는 이 영화의 구조는 세 남녀가 13년에 걸쳐 만들어 온 관계의 축소판이자, 쓰리섬의 은유기도 하다. 때문에 19금 장면이 거의 없고, 경기 장면이 영화 전체 분량의 50% 이상을 차지함에도 에로틱하게 다가온다. 굳이 비유하자면 타시는 경기의 흐름을 결정짓는 서브의 귀재이며, 아트는 긴 랠리를 끌어갈 수 있는 그라운드 스트로크에 능하고, 패트릭은 결정적 한 방인 스매시 능력이 특출하다. 아트와 패트릭이 주고받는 역동적인 공격과 수비 그리고 객석에 앉아서 이 모든 경기를 조종하고 있는 듯한 타시의 삼각구도는 영화 내내 성적 긴장감을 선사한다.

엔딩 역시 해석하는 재미가 있다. 세트를 나눠가지며 팽팽한 경쟁을 이어가던 패트락과 아트는 최후의 일격을 위해 맹렬하게 돌진한다. 경기 내내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두 남자가 벌이는 승부의 추에 오르락내리락하던 타시는 매치 포인트의 순간 비명을 지른다. 승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가자!"라는 타시의 외침은 무슨 의미인지 관객에 따라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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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망을 깨우는 감각적 연출…각본·촬영·음악, 모든 것이 힙하다

'챌린저스'는 스포츠 영화로서도 훌륭한 영화다. 테니스 룰을 알고 보면 더욱 재밌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승부의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영화를 위해 테니스를 배운 세 주연배우들은 적어도 영화 안에서만큼은 프로처럼 보인다. 배우들의 노력은 물론 촬영과 편집이 제 역할을 했다.

경기 장면에서 보여주는 스펙터클은 놀랍다. 특히 패트릭과 아트의 승부가 듀스를 거듭하는 3세트 장면은 압권이다. 스텝 프린팅(Step Printing: 저속 촬영 후 필름의 특정한 부분을 복사해 붙이는 방법으로 피사체의 비현실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영화 기법)과 로우 앵글 샷(Low-Angle Shots: 피사체를 올려다보며 찍는 기법)을 활용해 경기의 생동감을 주고 엔딩에 이르러서는 볼과 라켓에 카메라를 단 것 같은 효과를 주는 포인트 오브 뷰 샷(Point Of View: 시점 샷)을 통해 박진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분명 두 사람의 1:1 승부지만 어느 순간부터 관객은 아트 혹은 패트릭이 돼 경기에 참전하고 있는 느낌까지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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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트렌트 레즈너, 애티커스 로스가 담당한 OST는 도파민 파티를 유도하는 힙함의 결정체다. 테크노와 일렉트로니카를 기반으로 한 메인 테마곡 '챌린저스'(Challengers)는 등장 횟수로 놓고 보면 과잉에 가깝지만 인물들의 흔들리는 심리 상태와 조응하며 '혼돈의 카오스' 같은 기능을 한다.

저스틴 커리츠케스가 쓴 각본도 빼어나다. '챌린저스'는 구아다니노 감독의 영화 같으면서도 전혀 아닌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는 그가 만들어온 영화와 확연히 다른 소재(테니스) 때문이기도 하지만 처음으로 호흡을 맞춘 커리츠케스('패스트 라이브즈'를 연출한 셀링 송의 남편이다)의 필력 때문이기도 하다. 바운드를 예측할 수 없는 테니스공처럼 세 주인공 캐릭터를 흥미롭게 그려내고 이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관계의 역학은 팽팽한 긴장감을 형성한다. 또한 성공에 대한 야망, 인정 욕구, 육체적 끌림 등 인간 본연의 욕망을 날카롭게 묘사한 수준급의 각본이다. 금기의 욕망을 감각적으로 다루는데 능한 구아다니노 감독과 뻔한 주제도 세련된 플롯으로 풀어내는 재주가 있는 커리스케스의 협업은 차기작인 '퀴어'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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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세 배우의 매력이 영화 전반을 장악하고 있다. 특히 젠데이아의 매력을 도무지 모르겠다고 의문을 표했던 관객들에게 '챌린저스'를 그 답으로 제시하고 싶다. 영화에서 한 번도 자신의 매력을 대놓고 전시한 적 없던 젠데이아는 '챌린저스'에서 두 남성의 뮤즈로서 아름다움과 섹시함을 마음껏 뽐낸다. 그 섹시함은 노출이 유발하는 관능미가 아니라, 자신감과 당당함이라는 태도의 지분이 더 크다. 영화를 위해 3개월 만에 배웠다는 테니스 실력 역시 어색함이 없다.

타시는 선수로서의 삶이 좌절되자 챔피언을 키우는 코치로서의 삶을 선택한다. 자신이 선수가 되어 뛰진 못하지만 평범한 선수를 탁월한 선수로 재탄생하는 조물주의 위치에 올라 모든 것을 설계하고 조련한다. 이는 두 남자와의 관계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 위치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오롯이 자신의 능력이자 매력 때문이었다. 젠데이아는 생동감 넘치는 연기로 주체적이고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이번 영화에서는 연기뿐만 아니라 제작에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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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드라마 '더 크라운', 이탈리아 영화 '키메라'에서 안정적인 연기력과 독특한 매력을 드러냈던 조쉬 오코너는 자유로운 영혼 패트릭을 연기하며 내재된 페로몬을 마구 분출한다. 전형적인 미남이라거나 마초적인 매력으로 무장한 상남자 이미지는 아니지만, 모성 본능을 자극하는 매력이 있다.

'아트'를 연기한 마이크 파이스트도 대표작인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와는 확연히 다른 이미지로 강한 인상을 남긴다. 루저 마인드를 극복하고 성공했으나, 아내를 향한 의심과 친구를 향한 질투 등의 감정을 끝내 떨치지 못하는 유약한 인간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냈다.

두 남자는 한 여자를 두고 경쟁하지만, 때때로 동성애적인 무드를 유발하며 또 다른 흥미를 선사한다. 이는 감독의 성향이 반영된 의도된 연출처럼 보인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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